브라이언 다니엘슨을 늦게나마 추억하며 North America and UK Indy



10여년 전 브라이언 다니엘슨을 처음 봤을 때를 돌이켜 생각해봤을 때, 그의 첫인상은 내게 썩 좋지 않았다. 지극히 평범한 외모에경기복도 심지어 평범하게 갈색 트렁크 하나, 그리고 치킨윙같은 재미없는(?) 섭미션으로 챔피언에 등극하는 모습까지. 카리스마가 없어보이는 외향적인 모습에다가 '저 선수는 정말 테크니컬한 경기를 한다' '처음 본 사람이 지루해 할 수 있다'는 등 다른 이들의 얘기만을 듣고 '아, 이 선수 경기는 재미없겠구나'라고 지레짐작해버리고 그의 경기를 애초에 멀리했었다. 더군다나 CZW를 시작으로 인디를 처음 접했던 나였기에 그의 경기를 선뜻 접하기가 쉽지 않았다. 내가 ECW나 CZW 경기를 오줌 마려워질 정도로 무서운 걸 참아가면서도 접하려고 했을 때와는 다른 종류의 용기(?)가 필요했었다. 

그러다 내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ROH쇼를 처음 보게 된 건 내가 인디쇼를 CZW Cage Of Death 6로 처음접하고 나서 거의 딱 1년 뒤였다. 그 때, 아이팝에 TWM(Total Wrestling 뭐시기였는데 뭐였더라;)에 가입된 상태였는데 KENTA 대 로우키, 흥행 자체가 호평을 받는 것을 보고 호기심이 생겼었다. 막상 보니 ROH도 정말 재밌었고 그 유명한 켄타 대 로우키도 재밌게 봤었다. 브라이언 다니엘슨의 경기도 아마 재밌게 봤던 것 같다. 사실 다니엘슨의 경기는 거의 기억이 안난다. 브라이언 다니엘슨 대 마루후지보다 내 기억속에 더 어렴풋이나마 남아있는 건 제네레이션 넥스트와 토니 마말룩과 살 리나우로가 맞붙은 태그팀 타이틀전이다. 기억해 볼수록 확실해지는 건 다니엘슨은 정말 날 한 번에 사로잡은 선수는 아니라는 것이다.

2006년 CZW와 ROH가 대립관계를 가지게 되면서 자연스레 CZW보다도 흥행 수가 더 많았던 ROH를 더 많이 보게 되었다. 실제로도 CZW는 하향세를 타던 길이었고 ROH는 상승 주가를 치고 있던 상태였다. 이 때, 난 브라이언 다니엘슨보다 CZW vs. ROH 대립구도 자체에 더 집중했고 네크로 버쳐나 호미사이드같은 선수들을 더 눈길이 갔다. 하지만 브라이언 다니엘슨이도 차츰씩 좋아지기 시작했다. 사모아 조와 팀을 이뤄 켄타/마루후지 팀을 상대한 경기에서 등장 때 관중들에게 The Final Countdown이라는 등장음악으로 큰 환호를 받는 모습을 보며 그전에 그에게서 느끼지 못한 카리스마를 느꼈던 것이다. 켄타/마루후지와 맞붙었던 경기나 랜스 스톰과의 경기들은 기대 이상으로 재밌게 봤다. 그런 와중에 브라이언 다니엘슨을 완전히 인정하게 되고 그를 정말로 인정하게 되고 좋아하게 된 경기는 2006년 8월 12일 Unified에서 있었던 나이젤 맥기니스와 펼친 전설적인 타이틀 통합전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긴 하지만 나 역시도 Underdog인 선수에게 더 몰입하게 되기 때문에 나이젤 맥기니스가 피를 흘리면서 링 안에 20 카운트 안에 돌아와 투혼을 불사지르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허나 그런 맥기니스의 모습은 다니엘슨의 여유롭고 건방진 행동, 관중석을 향해 스프링보드로 뛰어드는 필사적인 태도, 미친 USB 엘보우를 무기로 나이젤을 격침시키는 챔피언다운 카리스마에 완전히 묻혀버렸다. 이후 켄타와의 역사적인 경기, 다음 해에 나이젤과 Driven에서 펼쳤던 명경기, 그리고 모리시마와 피튀겼던 대립을 보면서 다니엘슨의 팬이 되지 않을 수 없었고 그의 경기를 항상 기대하게 됐다.

내 기억이 맞다면 아마 나이젤과의 Unified에서의 경기 이후로 USB 엘보우가 더욱 더 빈번하게 사용되고 국내 레슬링 커뮤니티에도 크게 알려진 것으로 알고 있다. 한창 활동하시던 크르님이 만드신 것을 비롯해 USB 엘보우 짤을 꽤나 많이 봤었다. 생각해보면 이처럼 기본적인 엘보우같은 기술들로 다니엘슨만큼 관중들의 반응을 이끌어낼 정도로 임팩트를 줄 수 있는 선수가 있었나 싶다. 생각해보면 엘보우 뿐 아니라, 기본기 하나하나를 헛투루 쓰지 않고 확실한 의미를 가지고 썼다는 느낌이다. 스몰패키지같은 롤업 기술에도 피니셔다운 설득력을 불어넣었고, 로메로 스페셜같은 섭미션도 가끔은 그냥 상대의 무릎을 짓밟는 반전도 주면서 기술 하나하나에 색다른 재미를 줬다. 자신이 섭미션을 쓸 때, 상대가 로프를 잡음으로써 자신을 말리는 심판에게 I have til' 5라고 외치는 유행어까지 만들면서 레슬링 경기 중에 일어나는 상황, 기술 부분부분에 자신만의 트레이드마크나 소소한 재미들을 줬다. 



그러한 다니엘슨의 레슬링 센스는 나처럼 WWF 아니 심지어 CZW나 ECW같은 스타일에 익숙했던 레슬링 팬들도 "테크니컬 레슬링"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했다. 다니엘슨은 테크니컬한 스타일의 레슬링에 친숙한 재미를 섞어 그러한 스타일의 레슬링을 대중화시키면서 미국 인디만의 스타일로 형성하는데 일조했다. 일례로 2001년에 있었던 아메리칸 드래곤과 로우키 간의 경기는 당시 미국 땅에서는 보기 힘든 종류의 경기였다. WWF나 WCW, 그리고 단순히 하드코어가 아니라 크루져웨이트 스타일, 브롤러 스타일 등 경기의 다양성으로도 유명했던 ECW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경기였고 일본 프로레스와 비슷한 스타일이긴 했으나 약간은 달랐다. 이처럼 미국식 테크니컬 레슬링, 그리고 미국 인디 레슬링의 뼈대를 만든 그가 아니었다면 애초에 인디 프로레슬링에는 관심도 두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그가 없었다면 미국 인디 프로레슬링 시장은 지금만도 못하지 않았을까.  

허나 무엇보다 나에게 있어서 학창시절 친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자존감도 낮았고 교우관계도 다른 친구들에 비해 넓지는 못했고 취향 때문인지 뭔진 몰라도 사회성도 그렇게까지 뛰어나지 못했던 내가 그가 아니었다면 프로레슬링이라는 해방구를 만나지 못하고 불안정한 심리 상태로 더욱 더 헤맸을 것이다. 그는 그 누구도 빚지지 않았다고 했지만 난 아무리 생각해도 그에게 정말 큰 빚을 졌다. 



덧글

  • 공국진 2016/03/05 19:50 #

    다니엘슨이 있었기에 프로레슬링의 원초적이고 근본적이고 고전적인 재미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시합을 본 팬들은 분명 프로레슬링을 보는 눈이 더욱 성장했을 것 같아요^^.
  • 지에스티 2016/03/06 11:09 #

    정말이요.. 다니엘슨이 아니었다면 지금 잭 세이버 주니어나 티모씨 댓쳐같은 선수들의 경기들을 재밌게 볼 수 없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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