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GRESS Wrestling Chapter 25 "Chat Shit Get Banged" 리뷰(Review) North America and UK Indy


프로그레스 레슬링의 25번째 챕터 쇼의 제목 "Chat Shit Get Banged". 거의, 그대로 직역하면 "X같은 소리하면 맞는다" 라는 강렬한 메시지이다. 쇼의 제목에 대해 먼저 애기하는데 있어 EPL 얘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다. 이번 2015-16 시즌 개막 전 누군가가 "제이미 바디가 득점왕 경쟁을 할 것이며, 레스터는 강력한 우승후보일 것이다" 라는 소리를 했다면 열에 아홉은 "무슨 헛소리를 하냐" 며 헛웃음을 쳤을 것이다. 헌데 그런 말도 안되는 기적을 실현해나가고 있는 제이미 바디가 5년 전에 페이스북에 남긴 말이었기에 화제가 되었던 건 어쩌면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이 쇼의 제목은 확실히 짐 스몰만의 아이디어인 것으로 보인다. (PWG의 엑스칼리버처럼 짐 스몰만이 쇼 제목을 짓는 담당자일런지도) 레스터에서 나고 자란 그는 당연히도 "레스터 시티"의 큰 팬이기 때문이다.



이 쇼는 원-매치쇼라고 하기엔 좋은 매치업들이 워낙에 꽉차있었고, 실제로 메인 이벤트에 버금가는 훌륭한 경기가 나오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원매치 쇼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메인 이벤트가 이 쇼의 제목을 잘 반영해냈다. 이전에 프로그레스의 쇼 제목들은 대체로 쇼의 전체적인 분위기나 시기성, 개최하는 곳에 따라 정해져 온 편이었지만 이처럼 메인 이벤트의 내용이 이 쇼의 (테마가 되는) 제목을 잘 반영했던 것은 이례적이다. 윌 오스프레이가 지미 해벅이 가장 능한 No DQ 매치에서 승리하여 타이틀을 따냈듯, 이번엔 No DQ 매치로 타이틀을 '지키겠다'고 선언하며 경기에 No DQ 조항을 건 것은 흔한말로 신의 한수였다. 두 선수는 서로에게 Chat Shit Get Banged라는 마음을 가지고 '말그대로' 치고받았고, '악당' 마티 스컬은 '수갑'이라는 처절한 무기까지 사용하고서야 오스프레이를 눕힐 수 있었다. 일반 싱글매치였다면 두 선수의 마음가짐을 제대로 표현하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경기력이나 경기 내용에 드라마를 더했던 것은 압권이라고 할 수 밖에 업었던 두 선수의 표정 연기였다. (그리고 이 두 선수의 표정 연기를 더욱 더 빛나게 한 것은 빛나는 카메라워크와 편집이었는데 나중에 따로 글로 쓰려고 한다.) 예전에는 단순히 다리를 공격당했다면 다리를 전다던지, '논리적인 몸의 움직임'같은 부분에 포커스가 맞춰졌다면 최근에는 '접수'라는 부분에 있어서, '표정연기'라는 부분이 중요해지고 있다. 특히나 결의에 가득찬 윌 오스프레이의 표정들은 그를 응원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 정도였다. 우산에 머리를 맞기 직전의 표정은 최고였다. 

윌 오스프레이의 큰 경기들을 보면 니어폴들과 킥아웃이 많이 나오면서, 마치 롤러코스터를 오랫동안 탄 것처럼 '약간은 사람을 지치게 하는' 드라마가 있다는 비판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 그의 경기에 지치지 않는 이유는 앞서 말했던 특출난 표정연기가 첫번째 이유이고 두 번째로는 경기가 막바지가 되어도 꺼내들 수 있는 무기를 여전히 남겨놓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트리플 H와 존시나가 경기를 펼쳤는데 두 선수 모두 각자 스파인버스터나 파이브 너클 셔플 등 주기술도 다썼고 서로 피니셔까지 한번 씩 '씹었다'고 치자. 그런데 여기서 더 경기가 진행된다면 단순히 서로의 피니셔를 몇 번 더 이겨내는 것 외에는 기대할 수 있는 장면이나 드라마가 없다. 하지만 윌 오스프레이는 언제나 자신이 꺼낼 수 있는 최상의 무기들을 남겨놓는다. 챔피언에 등극했을 때 지미 해벅과의 대결이 그랬고, 마티 스컬과의 2연전이 그랬다. 30분에 육박하는 경기 시간이었지만 스컬도 그렇고 오스프레이 자신도 그렇고 남아있는 무기가 있었기 때문에 집에서 보는 팬들도, 현장의 관중들도 지치지 않고 경기에 더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윌 오스프레이의 큰 경기들의 흐름처럼 프로그레스에서의 마티 스컬의 흐름도 롤러코스터같았다. 마티 스컬에게는 PROGRESS에서 위기에 빠질 수도 있었던 그의 캐릭터였기에, 이번 타이틀 획득은 의미가 크다. Revolution Pro에서는 '악당'이라는 캐릭터로 변신한 뒤 그 캐릭터를 십분 발휘하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프로그레스에서는 말만 '악당'이었지 한동안은 딱히 악당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었다. 챕터 21이 되어서야 암을 이겨내고 돌아온 '인간 승리의 주인공' 크리스 트래비스에게 패배를 당한 후, 그를 존중하는 척하다가 무참히 짓밟으면서 제대로 된 악당의 면모를 드러내기 시작했는데 그것도 잠시, 트래비스가 결국에는 은퇴를 선언하면서 스컬은 스토리라인에서 큰 역할없이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 마땅한 스토리를 잃은 와중에 '비겁하고 악독한' 방법으로 'NPS 시리즈 II 우승자' 모건 웹스터, 'NXT'의 토마쏘 치암파 그리고 '前 프로그레스 챔피언' 램페이지 브라운까지 '조용히' 차례로 꺾으며 3연승의 파죽지세를 달려 기사회생의 발판을 마련했고 챕터 24의 메인 이벤트 후 윌 오스프레이를 공격하며 챔피언에 대한 선전포고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리고 자신이 말한 것처럼 무자비한 모습을 보여주며 결국 프로그레스 챔피언에 등극했다. 

마티 스컬이 마땅한 스토리가 없음에도 최고의 폼을 보여줬다는 점은 먼저 칭찬해야 하겠지만, 그보다 더 칭찬받을만한 것은 또 다시 빛난 프로그레스 부커진들이다. 두 가지 부분을 칭찬할 수 있을 것 같다. 첫번째로 윌 오스프레이가 패배했지만 전혀 잃은 것이 없도록 만든 것이다. 오스프레이는 파이팅 챔피언으로써 어김없이 끝까지 싸웠고 수갑에 손이 묶인 상태에서도 스컬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굴복하지 않았다. 스컬의 치킨윙에 자신은 포기의사를 보이지 않았고 다만 기절했을 뿐이었다. 오스프레이의 이미지도, 스컬의 무자비함도 모두가 더 돋보일 수 있었던 경기였다. 둘째로는 장기적인 안목이다. 잠시 대립 상대를 잃었던 마티 스컬을 우직하게 믿고 밀어줬고 결국 성과를 얻어냈다. 지미 해벅을 이을 '탑힐의 탄생'을 만들어냈다. 훌륭한 영웅영화에는 항상 뛰어난 악당이 있듯이 다른 영화나 드라마 등의 예술형식보다도 선/악 구도가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프로레슬링에서는 뛰어난 악당의 존재는 필수불가결이다. 뛰어난 악당은 판을 좌지우지 한다. 마티 스컬은 지미 해벅 이상의 캐릭터와 프로모 능력, 레슬링 스킬을 가진 선수다. 스컬은 어쩌면 해벅보다 더 오랜 기간동안, 해벅 이상의 영향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윌 오스프레이는 패배했지만 전혀 잃은 것이 없다. 

대단히 훌륭했던 메인 이벤트에 대해 말이 너무 길었지만 이 쇼에는 또다른 보석들도 있었다. 여성 선수들간의 4자간 경기는 놀랍게도 대단했다. 링 밖을 향한 다이브들에 타워 오브 둠까지, 남성 선수들도 하기 힘든 장면들이 나왔고, 네 선수 모두 정말 몸을 던지면서 경기에 임했다.  엘리자베스나 TK쿠퍼의 개입이 많은 편이긴 했지만 네 선수가 보여준 수고를 완전히 바래게 할 정도는 아니었다. 지난 챕터 19에 이어서 다시 한 번 여성 선수들간의 수준 높은 경기가 나왔는데 앞으로 챕터 쇼에서 더 많은 여성 경기를 보고 싶고, 나아가 디비젼 형성이 어느정도 되어서 타이틀까지 만들어진다면 좋을 것 같다. 

언뜻 평범해보이지만 경쾌한 테마곡과 그의 당당한 발걸음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해스킨스의 등장씬

현재 영국에서 가장 저평가받는 두 선수라고 할 수 있는 마크 해스킨스와 잭 깁슨은 눈부신 테크니컬 레슬링 경기를 펼쳤다. 마크 해스킨스가 가진 'No Gimmick Nedded' 스타일의 캐릭터는 현재 "캐릭터"라는 부분이 다시 부각되고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이 심화된 오늘날의 프로레슬링에서 정말 귀중한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Crobot의 Nowhere To Hide의 경쾌한 비트에 어울리게 빠르지만 당당하게 나와서는, 그 어떤 언어도 필요없이 몸으로 "No shit, just wrestling"이라고 말하는 그의 태도가 너무나도 마음에 든다.

이 쇼는 내용적으로 쇼의 제목에 잘 부합했을 뿐 아니라, 새로운 악역 챔피언의 탄생에 마크 해스킨스과 잭 깁슨의 지속된 주가 상승, 그리고 어김없이 나온 뛰어난 여성 선수들의 경기까지. 다가오는 2016년을 잘 준비해놓는 동시에 앞으로의 흐름을 예고하는 듯한 성격을 띄었다. '2016년의 첫 쇼'로써 응당히 가져야 할 목표를 잘 수행해냈다. 그동안 프로그레스에서 수많은 훌륭한 쇼들이 나왔지만 이 쇼는 단연 그 중 최고 수준이다.


★★★★☆


덧글

  • 공국진 2016/03/16 08:06 #

    포스터의 마티 스컬의 얼굴이 잠시 록키 로메로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챕터 25라면 아직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젊은 단체인가 보군요!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