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우리가 기억해야 할 100개의 인디 프로레슬링 경기 (1) 100위~91위 North America and UK Indy


귀차니즘 때문에 조금 늦게 올리게 되었네요. 또, 원래 20위까지만 순위를 정하고 100위부터 21위까지는 날짜 순으로 정렬하려다가 막상 성격상 그렇게 안되서 결국 경기들을 별점순으로 일단 정렬하고, 별점별로 빌드업, 의미성으로 나눠서 순위를 다 정했습니다. 하지만 아마 25위 단위 범위내로는, 그러니까 1~25위, 26위~50위 내에서는 순위가 큰 의미가 없을 것 같아요. 순간적인 느낌으로 정한 순위도 있어서.. 아무튼 100위부터 시작해봅니다!

100위

Necro Butcher vs. Super Dragon - First Round No Count Out No DQ

2006.09.02 PWG [Battle Of Los Angeles 2006 Night 2]

"바이올렌스 파티"




단연 인디계 최고의 브롤러들간의 만남이었기에 다른 BOLA 1라운드 경기와는 달리 이 경기가, No DQ 방식으로 치뤄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네크로 버쳐는 브롤러지만 특이하게도 자신이 상대를 압도하고 두들겨패는 경기보다는 자신이 흠씬 두들겨맞을 때 재밌는 경기를 선사하는 선수입니다. 2005년 사모아 조와의 경기가 대표적으로 그랬고, 이 경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경기 시간이 길었기 때문에 네크로 버쳐가 슈퍼 드래곤을 몰아붙이는 부분도 있었지만, 결국 이 경기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몇 분간 네크로 버쳐가 슈퍼 드래곤의 시그네쳐와 같은 기술들을 모두 당하는 부분이었고, 특히 슈퍼 드래곤이 네크로 버쳐의 안면을 더블 붓 스텀프로 짓밟는 장면과 철재의자에 커브 스텀프로 짓밟는 장면은 후에 '움짤'로 많이 알려졌습니다. 


99위

Chris Cash vs. Joker - Ladder
2003.12.13 CZW [Cage Of Death 5]

"크리스 캐쉬, 팬들의 기억속에 영원히 남다"




다른 명경기들에 비하면 순수 경기 퀄리티로는 다소 떨어질지 몰라도 이 경기가 가지고 있는 경기 내용 외적인 의미 때문에 탑 100 순위 안에 랭크했습니다. 사실 故 크리스 캐쉬는 인디 레슬링 역사를 통틀어 봤을 때,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은 아닙니다. 활약한 기간이 워낙에 짧기도 했고, 순수 경기력보다는 속된 말로 '똘기'하나로 CZW에서 떠올랐던 인물입니다. 그의 '똘기가' 처음으로 빛났던 순간이 바로 이 사다리 경기였습니다. 당초 이 경기는 크리스 캐쉬 & 디랜지드 대 애지리얼 & 조커로 태그팀 래더 매치로 치뤄질 예정이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디랜지드와 애지리얼이 빠지면서 조커와 크리스 캐쉬는 제대로 빛날 기회를 얻은 것이죠. 링 밖에 세팅해둔 사다리에 떨어지고, 로프 위에 올려둔 사다리에 떨어지는 등 입을 떡 벌어지게 하는 장면들이 속출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팬들의 기억속에 남은 건 경기를 끝냈던 테이블 위로 떨어지는 조커 드라이버였죠. 두 선수는 경기 후 기립박수를 받았고, CZW의 창립자이자 당시 사장이었던 존 잔딕이 나와 두 선수의 상태를 살폈습니다. 그리고 두 선수를 이례적으로 극찬했죠. 프로레슬링에서는 대체로 '더 착한 놈', 그리고 오히려 이런 명경기에서는 '진 놈'이 더 주목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크리스 캐쉬가 오히려 조커보다도 더 주목받은 것은 바로 그러한 공식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가 주목받은 더 큰 진짜 이유는 '더 미친 놈'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후 크리스 캐쉬와 사다리는 떨어질 수 없는 관계가 되었고, 2004년 한해동안 세 차례의 사다리 경기를 치르게 됩니다. 이 경기 이후로 탄력받은 크리스 캐쉬는 다음 해 COD6에서 팀의 주장으로 케이지 오브 데쓰 경기를 가지기도 합니다. CZW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헌신한 캐쉬였기에 CZW는 캐쉬가 짧은 커리어를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2005년부터 그의 테마곡 이름에서 딴 'Down with the Sickness'라는 이름의 흥행을 개최하고 있고, 매년 사다리 경기가 메인 이벤트로 펼쳐집니다. 그리고 경기 막바지에는 사다리 위에서의 캐쉬 플로우가 '전통'처럼 매년 나옵니다.



98위

Adam Pearce(C) vs. Colt Cabana - NWA World Heavyweight Championship
2012.04.08 NWAHollywood [TV Taping]

"현대식 올드 스쿨 레슬링의 진수를 보여줬던 라이벌 관계"




2014년 12월 에이스 스틸과의 은퇴 경기를 끝으로 현재는 WWE에서 백스테이지 헬퍼로 일하고 있는 애덤 피어스는 2006년 CZW와의 대립에서 ROH를 지키는 역할을 하면서도 짐 코넷과 함께 호미사이드를 괴롭히는 등 악역으로써의 능력은 뛰어나서 각종 스토리라인에서 ROH의 감초같은 역할을 해내긴 했지만, 그의 경기들은 '올드 스쿨'한 스타일이라 많은 팬들이 썩 좋아하진 않았습니다. 2008년 브렌트 얼브라이트와 NWA 월드 타이틀을 걸고 명경기를 보여주긴 했지만 '아 그의 경기도 재밌을 수 있구나'하는 정도였죠. 그런데 그런 그의 경기 스타일은 2011년, 그가 NWA 월드 챔피언을 차지하고나서 당시 NWA 소속이던 Championship Wrestling Hollywood(이하 CWH)의 뜨거운 관중들과 무엇보다 '절친'이기도 한 "콜트 카바나"라는 호적수를 만나면서 빛을 보기 시작합니다. 이 두 선수의 경기들 중 가장 회자가 되는 건 CWH에서의 경기들인데, CWH에서 치른 명경기들은 두 선수가 이후 Seven Levels Of Hate라는 이름의 7연전을 치르게 되는 결정적인 배경이 됩니다.


2011년 3월 6일에 가진 경기도 정말 대단했지만, 유투브 조회수만 보더라도 조금 더 화제가 되기도 했고 개인적으로도 더 재밌게 봤던 이 경기를 선정했습니다. 첫번째 경기보다 더 탄탄한 빌드업이 이뤄지면서 서로간의 증오심이 좀 더 쉽게 납득되었고, 좀 더 컴팩트하고 액션이 가득한 경기였습니다. 빅매치답게 관중들의 반응은 뜨거웠고, 경기 후 두 선수의 반응은 이 경기의 부록같은 재미를 줬습니다. 그리고 첫번째 경기가 두 선수가 가졌던 '처음의' 명경기라면 두 선수가 '라이벌'로 거듭나는데 있어서 큰 역할을 한 것은 바로 이 경기였습니다.




97위

Eddie Kingston© vs. Sara Del Rey - Grand Championship
2012.07.28 CHIKARA [The Great Escape]

"실질적인 사라 델 레이의 치카라 고별 경기"




사라 델 레이는 WWE에 에이전트로 진출하기 전 여러 단체에서 고별성격을 띈 경기들을 가집니다. nCw 팜므파탈에서는 코트니 러쉬와 함께 가지고 있던 쉬머 태그팀 타이틀을 캐네디언 닌자스에게 내주고, 같은 날 칼리미티의 타이틀에 도전해 패배했으며 AIW에서는 헤일리 헤이트리드와 명승부끝에 패배했습니다. SHIMMER의 자매단체 격으로 생긴 SHINE의 첫번째 흥행의 메인 이벤트에서는 재즈와 훌륭한 경기끝에 패배했고, ROH에는 정말 오랜만에 리턴해서 에디 에드워즈와 팀을 맺고 마리아 & 마이크 베넷팀을 상대로 가진 마지막 경기에서 승리를 거둡니다. CHIKARA에서의 마지막 경기 상대는 에디 킹스턴, 이카루스였는데 경기자체의 무게감이나 분위기를 생각했을 때, 이카루스와 의 경기가 더 뒤에 펼쳐졌지만 실질적으로는 이 경기가 사라 델 레이의 치카라에서의 고별 경기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사라 델 레이는 남자 선수 중에서도 체구가 큰 편이면서도 '인디 최고의 하드히터'라고 할 수 있는 킹스턴을 상대로 오히려 자신이 자랑하는 타격기로 맞불을 놓으며 대등한 경기를 펼쳤고, 킹스턴의 팔을 집중공략하며 스피닝 백피스트같은 킹스턴의 피니셔에 맞고도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킹스턴을 슈퍼플렉스로 메치고, 파일드라이버로 내리 꽂으며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고, 킹스턴도 사라 델 레이를 상대로 자신의 무기를 모두 꺼내보이면서 타이틀 재임기간 동안 최고의 타이틀 방어전을 치뤘습니다. 경기 후 킹스턴의 리스펙트와 모든 로스터들이 나와 관중들과 함께 사라 델 레이에게 기립박수를 보내는 장면은, 이 경기를 '진짜' 고별 경기로 느끼게 했습니다.



96위

Jay Briscoe vs. Mark Briscoe
2007.03.04 ROH [The 5th Year Festival:Finale]

"형제간의 명승부"




인디 뿐 아니라, 프로레슬링 역사상 최고의 태그팀 중 하나로 불릴만한 브리스코 형제는 팀으로써 보여주는 호흡이야 언제나 대단하지만 서로를 상대로 맞이했을 때도 매번 좋은 호흡을 보여줬습니다. 프로레슬링계의 또다른 형제인 브렛 하트와 오웬 하트 간의 경기들같은 정말 깔끔하고 군더더기없는 레슬링 경기와는 정반대로, 제이와 마크는 그들의 투박한 개성을 살려서 두 차가 전속력으로 달려 부딪치는 듯한 스타일의 경기로 관중들을 열광케 했습니다. 두 선수의 경기들 중 가장 화제가 되는 것은 2001년 CZW Best of the Best 1에서의 첫 경기, 그리고 ROH Honor Invades Boston에서의 ROH 데뷔 경기와 바로 이 경기입니다. 2001년의 경기는 당시 경기중에 관중들의 기립박수를 받을 정도로 충격적인 경기였습니다. 레슬링 데뷔 초기였던 그들은 온 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과격한 CZW 팬들도 크게 환호를 보냈던 컷 쓰로트 드라이버, 제이 드릴러같은 고각도 기술들은 충격적이었고, 링 밖을 향한 허리케인라나나 문썰트는 말이 안나올 정도였죠. 2002년 8월에 가진 보스턴에서의 ROH 데뷔 경기도 비슷한 스타일이었습니다. 큰 기술들이 속출하면서 관중들의 기립박수를 이끌어냈죠. 그리고 이 경기에서 제이 브리스코는 마크의 다리를 공격하고, 마크는 다리를 접수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실력이 발전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2007년 그들의 경기에서는 정교한 싸이콜로지에 대한 시도는 없었지만, 그들이 잘하는 큰 기술을 주고받는 것에 더 집중했습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전의 경기들에서는 툼스톤, 스크류드라이버같은 지나치게 큰기술들을 피니셔용이 아니라 다른 기술을 위한 셋업용이나 경기 후반의 공방에서 썼다면, 이 경기에서는 무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강하게 맞부딪치는 경기에서는 정교한 접수보다는 무리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싸이콜로지이고, 브리스코 형제는 5년만에 그것을 해낼 줄 아는 레슬러들이 되었습니다. 두 선수는 예전같았으면 벌떡 킥아웃해냈을 컷 쓰로트 드라이버, 제이 드릴러를 주고받고 쓰러지면서 둘 간의 대결에서 사상 첫 무승부를 기록하게 됩니다.



95위

Nick Gage vs. Thumbtack Jack - No Ropes Barbed Wire
2009.12.12 CZW [Cage Of Death XI]

"닉 게이지, 살아있는 전설 반열에 오르다"


https://giant.gfycat.com/MilkyKeenGerbil.mp4

- (혐오 주의) 비위 강한 분들만 위 영상을 보시길 바랍니다.


쵸크 브레이커나 붓 스크레이프같은 시원한 무브셋, 거칠고 터프한 캐릭터, 그와 꼭 어울리는 등장음악까지. 닉 게이지는 Nick F'n Gage라고 불리며 단연 CZW에서 인기가 많은 스타였습니다. 그런 그가 가장 인기가 많은 선수를 넘어서 사실상 '살아있는 전설'의 반열에 오르게 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2009년 6월 6일(날짜부터 으스스), TOD8에서 닉 게이지와 썸택 잭은 200개의 형광등과 유리들을 사용하는 룰로 결승전에서 맞붙습니다. 경기가 시작한 지 10분이 채 되지 않은 시점, 썸택 잭은 닉 게이지를 로프에 매달린 형광등에 내던졌고, 닉 게이지의 겨드랑이부터 거의 엉덩이 부분까지가 베이게 됩니다. 닉 게이지의 동맥이 끊어지면서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양의 피가 쏟아졌고, 헬리콥터가 급히 와서 닉 게이지를 수송해 병원에 실어갔습니다. 닉 게이지의 병원비를 위한 자선쇼까지 급하게 개최됐고, 다행히도 닉 게이지는 한달만에 링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같은 해 Tangled Web 2에서 당시 CZW 오너였던 잔딕은 DJ 하이드에게 회사를 물려준다는 발표를 하면서 존 다머와 함께 닉 게이지를 CZW 명예의 전당에 헌액시킵니다. 


썸택 잭은 10월, 석연치 않게 끝난 결승 때문에 치뤄진 토너먼트 오브 데쓰 8.5:Rewind로 4개월만에 돌아옵니다. 닉 게이지 역시 이 토너먼트에 참가했고, 前 CZW 오너인 잔딕을 물리쳤지만 마사다를 넘지 못하고 준결승 진출에 그칩니다. 썸택 잭은 파죽 지세로 스위치블레이드 콘스피래시의 멤버였던 존 목슬리와 쌔미 칼러한을 차례로 물리치고, 마사다를 결승에서 꺾으면서 울트라바이올렌트 챔피언과 TOD 우승을 동시에 거머쥡니다. 닉 게이지는 이후 썸택 잭을 공격하며 도전장을 내밀었고 마침내 두 선수는 COD 11에서 노 로프 가시철선 경기로 맞붙게 됩니다. 두 선수의 가시철선 경기는 20분 넘게 진행되었고, 그들이 지난 결승에서 보여주지 못한 것들을 마음껏 풀어내는 듯 했습니다. 가시철선을 이용한 붓스크레이프도 나왔고 벽돌을 이용한 무자비한 공격들도 나왔습니다. 닉 게이지는 썸택 잭의 크로스 레그드 미치노쿠 드라이버에 당하고도 1카운트에 일어나는 투혼을 보였으나 끝내 두번째에는 일어나지 못하면서 무릎을 꿇고 맙니다. 닉 게이지는 패배했으나 썸택 잭과 명경기까지 펼치며 '살아있는 전설'로써의 입지를 확고히 할 수 있었고, 썸택 잭은 닉 게이지를 꺾으며 자신의 TOD 우승에 정당성을 가질 수 있었던 것과 동시에 그의 해와 다름없었던 2009년을 잘 마무리했습니다. 



94위

Kings Of Wrestling(C) vs. The Briscoes - ROH World Tag Team Championship No DQ
2010.06.19 ROH [Death Before Dishonor VIII]

"헬리콥터 크래쉬의 탄생"



크리스 히어로와 클루디오 캐스탱욜리로 이뤄진 킹스 오브 레슬링은 2007년 8월 치카라에서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2년 만에 2009년 ROH 파이널 배틀에서 재결합합니다. 더 브리스코즈를 공격하며 태그팀 타이틀에 도전장을 내민 킹스 오브 레슬링은 Big Bang에서 브리스코즈를 꺾으며 새로운 태그팀 챔피언에 등극하면서 파죽지세를 달립니다. 더 브리스코즈는 KOW의 계속된 공격에다가 타이틀까지 빼앗기며 이를 갈고 있던 상태였죠. 허나 이 경기 전 더 브리스코즈가 캐나다 국경을 통과하지 못해 쇼에 도착하지 못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경기는 취소될 듯한 분위기였습니다. 당시 부커였던 애덤 피어스와 오너인 캐리 실킨이 당황하는 모습까지 잡혔죠. 극적으로 더 브리스코즈가 관중석에서 뛰어들어와 KOW를 공격했고 두 팀간의 뜨거운 혈투가 결국 시작되었습니다. 경기는 상당히 단순한 구조였습니다. 초반은 브리스코즈가 온몸을 던지면서 분노를 표출했고, 중반부는 KOW가 굴하지 않고 브리스코즈를 압도해나가는 내용이었습니다. 후반부에는 링포스트에 밧줄로 묶였던 제이 브리스코가 심판 폴 터너의 도움에 힘입어 풀려나면서 전세가 역전되는 분위기였고, 헤가돈의 난입이 결과에 큰 영향을 주게 되었죠. 경기 막판, 히어로의 엘보우 패드 롤링 엘보우를 이겨낸 제이 브리스코의 투혼은 놀라웠으나 KOW의 더블 팀 자이언트 스윙/싱글 레그 붓 콤비네이션에 무릎을 꿇습니다. 네 선수는 경기 내내 피를 철철 흘렸는데 '뭐 때문에 이 타이밍에 피가 난건지?'싶긴 했지만 브리스코즈는 누가 누군지 분간이 안갈 정도의 블레이드 잡을 해내면서 경기의 처절함을 충분히 더해줬습니다.  KOW가 이 경기에서 마무리로 썼던 기술은 후에 헬리콥터 크래쉬로 명명되었고 헬리콥터 크래쉬가 처음으로 쓰였던 경기가 되었습니다. 선수 간의 갈등이 깊거나, 경기 내용이 뜨겁다면 자이언트 스윙에 싱글 레그 드랍킥같은 기본기술의 조합도 피니셔가 될 수 있음을 실감케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캐스탱욜리는 후에 세자로라는 이름으로 타이슨 키드와 팀을 맺었을 때도 이 기술을 태그팀 피니셔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이 경기가 더 높은 순위를 기록하지 못한 이유는 No DQ라는 경기조항에 충실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경기 초반 10여 분은 일반 태그 경기와 다를바 없는 구조였고, 경기 후반에 쓰인 무기라 해봐야 엘보우 패드, 밧줄, 테이블(그나마 이 중에서도 무기로써의 역할을 하는 건 테이블 뿐) 정도였습니다. 



93위

Claudio Castagnoli vs. El Generico - Semi Final
2011.08.20 PWG [Battle Of Los Angeles 2011]

"인디에서의 마지막 맞대결"


NXT가 2012년 개편된 이후, 최고의 라이벌을 꼽으라면 최근의 사샤 뱅크스 대 베일리같은 위대한 라이벌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새미 제인과 세자로 간의 관계를 꼽고 싶습니다. 2013년 여름에 가진 2 out of 3 폴스 매치는 경기 직후 "Match of the Year"라는 연호를 받을 정도였고, 2014년 NXT의 첫 라이브 스페셜 쇼였던 ArRival에서 가진 경기는 그 해 최고의 경기 중 하나였습니다. 당시 지루했던 보 댈러스의 타이틀 재임기간을 두 선수의 라이벌 구도가 잘 메꿔준 느낌이었죠. 그리고 두 선수의 대단했던 라이벌 관계의 시초는 인디 시절 두 선수의 맞대결에 있습니다. 


두 선수의 첫 싱글매치 맞대결은 2011년 7월 Race to the Top Tournament 결승전이었습니다. 제네리코는 딜리리어스, 크리스 히어로, 데이비 리쳐즈를 꺾고 결승에 진출했고 캐스탱욜리는 할로위키드, 마이크 퀙큰부시, 잭 에반스를 꺾고 결승에 올랐습니다. 숨이 멎을듯한 카운터들이 오가는 훌륭한 공방전 끝에 당시 차세대 ROH 메인급 스타로 떠오를듯한 기세였던 캐스탱욜리가 승리를 거뒀습니다. 두 선수는 2008년 1월 Without Remorse에서 재경기를 가졌고 어김없이 좋은 경기를 펼쳤습니다. 두 선수는 3년 뒤인 2011년, PWG에서 두 경기를 더 가지게 됩니다. 첫 경기는 PWG의 그 해 첫 쇼였던 Kurt Russellreunion 2 였습니다. 이 경기는 두 선수의 대결 중 가장 템포가 느리면서도 (선/악 구도를 약간 띄었던) 가장 드라마틱한 경기였죠. 엘 제네리코가 캐스탱욜리의 스트레치 머플러에 무릎을 꿇으며, PWG에서도 패배하고 맙니다. 




이 경기를 기억에 남게 한 미친 시퀀스!


그리고 두 선수는 2011년 8월 20일 배틀 오브 로스 엔젤레스에서 맞붙게 됩니다. 경기의 길이 뿐 아니라 내용적인 면에서도 두 선수의 PWG 월드 타이틀전은 NXT ArRival에서의 맞대결과 약간 닮아있다면 이 경기는 두 선수가 NXT에서 가졌던 2 out of 3 falls 매치와 닮아있는데요, 앞의 두 경기는 더 긴 경기시간에 선/악 다이나믹에 포커스를 두었다면, 이 경기와 NXT에서의 2 out of 3 falls 매치(그리고 Race to the top 결승)는 한 시퀀스가 길게 진행되는 형태에, 숨이 멎을 듯한 카운터가 속출하면서 '물고 물리는 액션'이 주는 재미를 극대화하는 방향이었습니다. 


경기 중 캐스탱욜리가 제네리코의 탑로프 다이빙 허리케인라나를 받는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음에도 오히려 세 차례의 닥터밤으로 임기응변하면서 실수를 오히려 경기 분위기를 끌어올리는데 이용한 것 또한, 큰 플러스 요인이었습니다.



92위

Drew Galloway© vs. Grado - ICW World Heavyweight Championship

2015.11.15 ICW [Fear & Loathing VII]

"경기 주선도 못받던 유투브 스타에서 5,000명의 관중을 불러모으는 메인 이벤트 스타로, 그레이도의 인생역전"




그레이도는 불과 2012년까지만 해도 형인 글렌 던바와 함께 로우랜더스라는 태그팀으로 스코틀랜드 지역단체인 SWA에서만 경기를 가지던 "보잘 것 없는" 인디 레슬러였지만, 유투브에 올린 티켓 홍보영상, 프로모 영상들이 유명해지면서 ICW의 오너인 마크 댈러스의 눈에 띄게 됩니다. ICW는 그의 캐릭터를 살려 "Get Grado Booked"라는 캠페인을 유투브로 진행했고,그레이도는 Insane in the Membrane에서 STI에게 당하던 울프강과 故 드류 맥더날드를 구하면서 ICW에 처음 등장합니다. 처음에 안전요원들에게 끌려나가던 그였으나 마크 댈러스가 그가 경기를 펼칠 수 있도록 허락했고, 경기에서 패배하긴 했지만 쇼에서 한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그에겐 큰 성과였죠. "The British Wrestler"라는 제목의 Vice 다큐멘터리에도 나오면서 유명세는 더해졌고 바로 레드 라이트닝의 타이틀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합니다. 순식간에 그는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선수가 되었고, 불과 1년만에 미국의 탑 인디레슬러 콜트 카바나와의 대결을 주선받습니다. 콜트 카바나에게 놀랍게도 승리를 거두고, 후에는 카바나와 팀을 이뤄 태그팀 타이틀을 따내는 등 상승세를 이어가지만 ICW 헤비급 타이틀 도전에는 마이키 위플래시, 잭 제스터 그리고 드류 갤로웨이까지 다양한 챔피언들을 상대로 매번 무너졌죠. 


그레이도는 Shug's Hoose Party II에서 브램에게 승리를 거두고 다시 타이틀에 대한 야망을 드러냈고, 블랙 레이블의 멤버인 GM 레드 라이트닝, 챔피언 드류 갤러웨이, 잭 제스터에게 당하던 故 크리스 트래비스를 빅 데이모, 조 코피와 함께 구한 뒤 드류 갤러웨이는 자기한테 질까봐 쫄아있다며 잔뜩 도발합니다. 화난 드류 갤러웨이는 그의 도전을 받아들였고, GM 레드 라이트닝은 경기를 취소하려 했으나 오너인 마크 댈러스가 돌아와 경기를 확정시켰습니다.


그레이도는 SECC에 모인 5,000여명의 관중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등장했고, 그 어느때보다 강한 동기부여를 받은 그레이도는 드류 갤러웨이의 클레이모어, 퓨쳐쇼크 DDT, 에어 래이드 크래쉬를 모두 이겨냅니다. 그리고 GM 레드 라이트닝의 난입을 커미셔너인 믹 폴리가 나와 막아냈고, 그레이도 위붓을 작렬시키자 오너인 마크 댈러스가 나와 3카운트를 세며 그레이도가 ICW 데뷔 3년여만에 챔피언에 등극합니다. 경기 후 믹 폴리가 그레이도를 안으며 축하해주는 모습은, 두 선수 모두 좋지 못한 운동신경을 가졌음에도 레슬링계에서 성공한 선수가 되었다는 점에서 새삼 큰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91위

Roderick Strong(C) vs. Eddie Edwards
2011.03.19 ROH [Manhattan Mayhem IV]

"ROH 역사상 최고의 이변"




데이비 리쳐즈와 아메리칸 울브즈로 팀을 이루며 팬들의 눈에 띄기 시작한 에디 에드워즈는 2010년 초대 TV 타이틀 토너먼트에서 우승을 거두고, 같은 해 서바이벌 오브 더 피티스트에서도 우승하며 싱글 레슬러로써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크리스토퍼 다니엘스 등과 좋은 경기를 만들어내면서 팬들의 지지를 얻어가고 있었지만 아주 훌륭한 경기는 없었고, 타이틀 도전하기 전 케니 킹과 마이클 엘긴을 꺾었으나 '당시' 이 선수들의 위치를 생각해볼 때 기세를 붙이는데 크게 도움이 되진 않았습니다. 여전히 에드워즈는 태그팀 파트너인 데이비 리쳐즈의 그림자에 다소 가려진 느낌이었습니다. 굳이 락커즈에 비유하자면 데이비 리쳐즈가 숀 마이클스라면 에드워즈는 마티 자네티였죠. 그렇기에 에디 에드워즈의 챔피언 등극은 그 어느때보다 놀라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에디 에드워즈에게는 이 경기가 곧, 스타메이킹 경기가 되었죠. 최고의 챱을 자랑하는 선수들이니만큼 두 선수가 경기 중 보여줬던 챱 대결은 날이 잔뜩 섰었고, 당시의 시점에서 에디 에드워즈 커리어 사상 최고의 경기라고 할 수 있을만큼 훌륭한 경기였습니다. 너무나도 놀라웠던 결과 때문에 도리어 경기의 내용이 다소 가려진 감이 있었습니다. 경기 후, 관중들의 반응은 그보다 더 시끄러울 수 없을 정도였고 ROH 역사상 최고의 함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아무래도 에디 에드워즈는 로데릭 스트롱에서 데이비 리쳐즈로 넘어가는 과도기 챔피언으로써의 성격이 강하긴 했지만, 대단히 좋은 이변이었고 멋진 순간이었습니다.